[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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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6.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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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섬에는 이렇다 할 맹수도 사람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사방을 짓누르는 듯한 고요만이 서량(徐亮)의 마음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조여 올 뿐이었다. 그렇게 한 참을 돌아다니던 서량은 제법 큰 연못을 발견하고는 연못가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몸을 쉬려고 할 때였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이 서량의 등허리를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순간 위협을 느낀 서량은 빠르게 몸을 뒤로 돌렸다.

서량의 앞에는 머리와 수염이 온통 하얀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눈빛은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고 무엇인가를 애원하는 눈빛 같기도 했다. 노인은 정중한 목소리로 서량에게 말했다.

“두려워 마시오. 나는 이 연못에 사는 용신이오.”

“노인장이 내 꿈에 나타나서 나를 이곳에 남겨 두게 한 그 용신이란 말이오?”

“그렇소.”

“도대체 나를 이곳에 두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를 잡아가기라도 하겠다는 말이

오?”

서량(徐亮)의 거침없는 말에 노인은 애원하는 말투로 말했다.

“아니오. 내가 당신에게 부탁할 말이 있어서 그랬소.”

노인의 간절한 말투에 서량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래 나에게 부탁할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어디 들어 보기나 합시다.”

노인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백년동안 이 연못에서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얼마전부터 동이 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하늘에서 사미승이 내려와 다라니경을 외우며 연못을 도는데 신기하게도 세 바퀴를 돌고 나면 우리 일가들의 몸이 물속에서 연못 위로 저절로 떠오르게 되지요. 그러면서 사미승은 이들 중에서 제일 살찐 한 마리를 잡아 먹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 간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우리 일가들은 거의 다 잡아먹히고 우리 늙은 내외와 딸 아이 하나만 남게 되었소. 그래서 이래저래 방도를 궁리 하다가 신라에서 그림 잘 그리기로 이름난 당신이 이곳을 지난다는 것을 알고 배를 잡아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오. 부디 남은 우리 일가를 구해 주시오.”

말을 마친 노인의 눈에는 희미하게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서량은 잠시 생각에 잠겼으나 문득 노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서량의 말에 노인은 반가운 기색으로 얼른 대답했다.

“어렵지 않소. 내일 아침이면 또 그 사미승이 하늘에서 연못으로 내려 올터이니 그때 화살로 그 사미승을 쏘아 죽여 주시오. 놓치지 말고 단 번에 쏘아 죽여야 합니다.”

노인의 말에 서량은 알았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기로 승낙했다. 서량은 그날 밤 연못에 풀이 우거진 곳에서 숨어 있었다. 깜짝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싸늘한 새벽 한기가 온몸을 감싼 서량은 얼른 잠에서 깨어났다. 먼 동쪽으로 희미하게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노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서량은 화살을 활에 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풀속에 숨어 연못 주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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