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소설] 술 항아리 속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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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작소설] 술 항아리 속의 사람들
  • 권우상
  • 승인 2017.11.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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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옥매가 막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여보, 정신이 있소 없소 ? 물에 뛰어 들다니........”

강만수는 짊어진 맷돌을 벗어던지면서 마누라 옥매를 꼭 불잡았다.

“어서 집으로 돌아갑시다. 정대감 가족을 죽일려고 내가 꾸민 일이오”

“어머 당신이?”

강만수는 마누라 옥매와 같이 돌아오는 길에 아직도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가엾은 장님을 구해내어 후하게 사례를 한 후 돌려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즉시 열 두명이나 되는 정대감 첩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정대감은 용궁으로 떠났으니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장대감의 논밭을 각자 얼마씩 떼어 줄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서 이제 마음 놓고 살아보세”

제 몫으로 논밭을 받은 첩실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강만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마누라 옥매를 두 팔로 힘껏 끌어 안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에서 임금 다음으로 권세를 가진 분은 문하시중 정도전 대감이오. 정도전대감은 내가 죽인 정대감의 친척이라 이 사실이 밝혀지면 나를 참형에 처할 것이 분명하오. 그러니 집과 논밭을 팔고 멀리 경상도 남해안 쪽으로 떠납시다.”

옥매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강만수는 집과 논밭을 팔아 돈을 갖고 마누라 며칠동안 먹을 음식을 준비하여 옥매와 함께 배를 타고 낙동강 물길을 따라 남쪽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며칠 동안 항해한 끝에 낙동강 하구인 다대포에 정착하여 어부로 살았다.

그런데 이 무렵 한양의 남산골에 사는 가난한 선비 장경문은 당쟁으로 몰락한 정승의 후손으로 낡은 집 한 채에 의지하여 죽지 못해 간신히 연명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민생을 살피고자 암행길에 나섰다가 장경문의 비참한 생활을 본 임금은 사정을 딱하게 여겨 장경문을 동래 목사의 관직을 내렸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임명이었다. 장경문은 칙사가 돌아가자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로 감격했으며, 그의 부인도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부인은 남편 장경문에게 이제 벼슬을 했으니 좋은 수가 있다고 귀뜸하며 묘안을 제시했다. 장경문은 아내의 말에 무릎을 치며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어느 날 강만수는 돈 7백냥을 쓰면 비장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이 솔깃했다.

“육백냥이라.”

강만수는 하인 상놈이 벼슬자리를 얻자면 뇌물을 쓰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 하자 정대감의 논밭을 팔아서 가지고 온 돈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비장을 뽑는 날 장경문은 사랑방 미닫이 문을 열고 거만하게 버티고 앉았다. 면접시험을 보는 젊은이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가 한 사람이 사랑방 댓돌 밑으로 나가면 장경문은 긴장죽으로 손짓을 하며 인물을 심사하는 것이었다. 강만수 차례가 되자 장경문은 말했다.

“재산은 있느냐?”

"벼슬을 하는데 재산이 있어야 합니까?“

”벼슬아치가 가난하면 반드시 비리가 생기고 백성을 못살게 굴 것이다. 그러므로 재산이 있으면 그런 엉뚱한 마음은 추호도 갖지 않을 것인즉 내 특히 그 점을 참작하여 재산이 있는 자를 비장으로 뽑는 것이다 알겠느냐? 그래 재산은 있느냐?“

”아비에게 물려 받은 재산이 천냥쯤 있습지요.“

”천냥이라 그만 됐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장경문은 가까이 강만수에게 조그마한 종이 쪽지를 하나 보여 주었다. 종이에는 이방 900냥, 호방 800냥, 예방 700냥, 공방 600냥, 그리고 다시 행을 바꾸어 형방800냥, 등등이 쓰여져 있었다. 강만수가 주욱 훑어보니 다른 자리엔 각각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데 이미 팔렸다는 표시고 예방과 형방만이 빈자리였다.

장경문이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보았느냐? 너도 잘 알다시피 육방 관속 밑에 적힌 금액은 보증금이다. 너도 알겠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그것을 생각해서 돈을 받아 두었다가 혹여 불상사가 생기면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다.”

즉 이 말은 벼슬을 할려면 돈을 쓰라는 것이었다. 벼슬을 하면 어디선가 돈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강만수는 100냥을 더 쓰면 육방의 우두머리 이방을 차지할 수 있는데 벌써 팔려 나갔다고 하니 분하기 짝이 없었지만 할 수 없이 800냥을 주고 형방을 사서 비장의 벼슬을 얻었다.

돈 800냥으로 형방 벼슬을 차지한 강만수는 동래 부사 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하인 신세도 면하게 되었다. 형방이 된 강만수는 죄를 짓고 잡혀온 죄수들에게 뒷돈을 받고 죄를 감해 주거나 혐의가 없다고 하면서 석방해 주었다. 장경문 부사가 벼슬을 할려면 돈을 쓰라고 했으니 어디선가 돈이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벼슬을 하고 보니 장경문 부사의 그 말이 뇌물을 받는 것이라고 알았다.

강만수는 받는 뇌물에서 일부를 부사 장경문에게 다시 뇌물을 갔다 받쳤다. 이렇게 되자 돈을 가진 백성은 죄를 짓고도 물려나는가 하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 돈 없는 백성은 옥살이를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동래 관아의 일만는 아니었다. 전국 팔도의 크고 작은 관아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사회는 온통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다.

이 때가 조선 명종시대였는데 조정에서는 무호, 갑자 기묘사화 등 일어나면서 사회가 극단적으로 혼란에 빠졌고 민심이 흉흉하여 도적들이 들끓었다. 게다가 몇 년째 흉년이 계속되어 거지가 늘어나고 도적떼가 할거하였으며 남해안에는 왜구가 침입하여 민가를 불지르고 약탈을 자행하였다. 그야말로 조선 사회는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임꺽정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강만수는 이런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출세를 하고자 백성들에게 뇌물로 긁어모은 돈으로 다시 상전에게 뇌물로 바쳤고 동래 부사 장경문이 조정에 발탁되어 한양으로 영전가면서 빈 그 자리를 강만수가 꿰찼다. 일개 천한 종의 신분인 강만수가 동래 부사 자리에 오른 것은 그로서는 대단한 출세였다. 그는 지금도 상놈이 벼슬을 하거나 양반 신분이 되기 위해서 돈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육방 관속을 뽑을 때는 장경문이 한 것처럼 이방은 800냥, 예방은 600냥 형방은 700냥 공방은 600냥 하는 식으로 뽑았다.

이처럼 조선 시대 정종 초기에는 벼슬아치들의 비리가 많아 팔도 백성들의 입에서는 임금이 무능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다 보니 고을의 사또들의 횡포가 극심하여 백성들이 삶이 매우 곤궁하였다. 이런 백성들의 고통을 알게 된 이방원은 청렴결백한 길재(吉再)를 관직에 등용하여 벼슬아치들의 부패를 척결할 생각으로 임금에게 길재를 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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