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소설] 술 항아리 속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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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작소설] 술 항아리 속의 사람들
  • 권우상
  • 승인 2017.12.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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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회

“ 뭣이 큰일이냐 ? ”

내시는 영문도 모르고 태연하게 물었다.

“ 수 수문장이 주 죽고 모 모두가 죽었습니다요..”

“ 천천히 말해보거라. 누구에게 수문장이 죽고 모두가 죽었단 말이냐 ? ”

“ 어디서 온 군사인지는 모르나..”

“ 장차 임금이 되실 세자를 모시는 수장이란 말만 들었지 자세한 것은 모르옵니다 ”

“ 장차 임금이 되실 세자께서는 지금 대궐안에 계시는데 누가 세자란 말이냐..”

하고는 변란이 일어났음을 알고 내시(內侍)가 급히 어전의 상궁에게 전했다. 소식을 들은 대궐안은 삽시간에 놀라 아수라장이 되면서 각자 피신하기가 바빴다. 변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대궐로 쳐들어 왔다는 말에 대궐에 있던 대신들은 제 목숨만 챙기기 위해 대궐안 구석을 이리저리 찾아다니기가 바빴다.

“ 뭣이라 했느냐 ? 방원 형님이 반란을 일으켰다 했느냐 ? ”

다급한 방석의 말에 상궁은

“ 그렇다 하옵니다 ”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겁에 질린 방석은 마지막 수단으로 왕을 움직여 목숨이라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석은 경순공주의 남편인 부마 이제(李濟)의 부축을 받아 이방번과 함께 왕이 병이 들어 누워있는 청량전으로 갔다. 그리고는 애원에 찬 목소리로

“ 아바마마 ! 목숨을 살려주시옵소서...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아바마마 목숨을 살려주시옵소서...”

“ 세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 ”

하고 영문도 모르는 왕(이성계)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세자 방석은 더욱 다급한 목소리로

“ 아바마마 ! 방원 형님이 반란을 일으켰다 하옵니다. 지금 방원 형님 군사들이 대궐에 쳐들어 왔다고 하옵니다. 아바마마 ! 이걸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 ”

“ 방원이 이놈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고얀놈 같으니라구 ..”

왕(이성계)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방석은

“ 아바마마 ! 세자 자리도 싫고 왕자 이름도 귀찮사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옵소서... 빈과 아기... 형님과 매부 내외를 살려주시옵소서. 아바마마 목숨만 살려 주옵소서... 목숨만 살 수 있다면 대궐을 벗어나 저희들끼리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겠사옵니다....”

눈물이 뒤범벅이 되고 목이 메인 소리로 방석은 왕(이성계)앞에 엎드려 애걸복걸 간청했다. 그제야 왕(이성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도승지 들거라 ! ”

도승지를 불렀으나 도승지는 어디갔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왕은 아마 정도전 등이 무슨 일을 꾸미는 듯 하더니 일이 잘못되어 역습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왕(이성계)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는

“ 정도전은 어디 있느냐 ? ”

하고 물었다. 도승지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상궁이 허리를 굽혀 울면서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비명에 간 줄로 아옵니다.. 정도전 정승 남온 대감 부원군께서도.....목숨을 잃으셨다 하옵니다.. 흐흐흑...”

왕은 깜짝놀라

“ 뭣이 ? 그게 모두 사실이란 말이냐 ? ”

왕(이성계)은 벌떡 일어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끝까지 조정 중신들과 의논하여 세자 방석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였으나 하륜(河倫)이 미리미리 벼슬아치들을 매수하여 이방원의 편으로 끌어들여 조준, 김사형은 물론 삼사(三司)에 이르기까지 세자의 경질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듯 하였다. 워낙 세자 경질의 요구가 강하여 왕(이성계)은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다. 왕은 잠시 생각하다가 긴 한숨을 푹 쉬며

“ 내가 다스리는 삼천리 강토가 대궐안인줄 알았더니 이렇게도 백성들의 마음이 내 곁을 떠났단 말인가 ! ”

진실로 왕(이성계)은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방석을 세자에서 폐하자니 차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대로 견디자니 지탱할 만한 힘이 없었다. 왕(이성계)은 방석 형제와 부마(왕의 사위) 이제(李濟)에게 더 나쁜 사태가 다가오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 세자야 ! ”

“ 예. 아바마마 ! ”

왕(이성계)은 막내 아들 방석을 불렀다. 그리고는 두 손을 꼭 잡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름이었다. 주르르 눈물이 두 볼을 적셨다. 늙고 외로운 왕이 어린 아들을 위하여 흘리는 피맺힌 눈물이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는지 몰랐다. 왕(이성계)은

“ 권력은 참으로 무상한지고 ! ”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다음날 아침 왕(이성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조서를 내렸다.

- 조정 대신들은 방원으로 하여금 세자로 책봉하라 고집하나 그럴 수 없고 형제의 차례에 따라 영안대군 방과(方果)를 삼겠노라 -

조서의 골자는 이러했다. 방과는 왕의 환후를 조심해서 소격전(昭格殿)에서 재(齋)를 올리고 있다가 이방원의 반란이 일어나자 행여나 화를 당할까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양주 고을로 피신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자로 책봉되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방과로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덩굴 채 굴러 떨어진 세자 자리이니 얼쑤 좋다하고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과(方果)의 측근들은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다.

방과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쩐지 세자 자리가 불안했다. 아니 오히려 역증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왕의 어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방과는 대궐을 향하여 사은사배(謝恩四拜)를 올리고 급히 대궐로 향해 떠났다.

한편 영안대군 방과(方果)가 세자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황토마루 이방원의 사저에서는 어두운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조준, 김사형, 하륜, 이숙번 등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반해 이방원은 오히려 통쾌하고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떠뜨렸다.

“하하하. 하하하. 방과 형님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 하하하 이제야 말로 주상께서 정신이 드신모양구만.. 하하하. 방과 형님이 세자라. 그러면 그렇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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