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소설] 술 항아리 속의 사람들
상태바
[권우상 명작소설] 술 항아리 속의 사람들
  • 권우상
  • 승인 2017.12.15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9회

길재(吉再)는 가까스로 겨우 몸을 일으키고는 왕이 있는 북쪽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 전하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해와 같은 전하의 은혜 어찌 갚을지.. 흐흐흑....”

길재(吉再)는 왕이 고마움에 꺼이꺼이 울었다. 이숙번과 일행도 눈시울을 적셨다. 방에 들어가 어의(御醫)는 길재의 병을 진맥했다. 이숙번은 어의에게

“ 그래. 병환이 어떠시오 ? ”

어의(御醫)는 이미 수명이 다했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내젓고는

“ 더 이상 약으로는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이숙번은

“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단 말인가 ? ”

“ 그렇습니다. 참으로 송구합니다 ”

“ 허어.. 이를 어찌나.. 주상께서 반드시 쾌차하시도록 온 힘을 다 기울리라고 하셨거늘.....“

“ 하오나 천명이 다 하온걸 어찌 합니까..”

“ 허허 이를... ”

이숙번은 안타갑다는 표정이었다. 주위에 둘러앉은 일행도 안타갑다는 표정이었다.

이숙번은

“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이렇게 가는 것인데 참으로 무상한 것이 인생이구만.....“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 길재(吉再)는 바람 앞에 호롱불처럼 가물거리는 정신을 잠시 가다듬고는 일어나 앉아 허리를 굽히고 왕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올렸다.

“ 전하 ! 불초한 소인을 용서하시옵소서... 전하의 옆에서 마지막으로 용안을 뵙지 못하고 떠나는 소인을 너그럽게 용서하시옵소서. 전하 ! 흐흐흑...”

하고는 길재(吉再)는 옆으로 빗실 쓰려졌다. 그리고는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 숨을 거둔 것이었다. 이숙번은 감짝 놀라

“ 대감 ! 대감 ! ”

부르며 길재(吉再)를 부축했다. 일행도 놀라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길재(吉再)는 이미 눈을 감고 숨을 거두었다. 이숙번은 벌떡 일어나며

“ 다들 여기에 있으시오. 내가 이 길로 한양으로 달려가 주상께 고할 것이오 ”

그렇게 말하고는 이숙번은 곧바로 말을 타고 한양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길재(吉再)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왕(이방원)은 무척 슬프하며 조문단을 이끌고 직접 길재(吉再)의 상문길에 나섰다. 여러가지 이유를 대어 왕이 직접 문상하는 것을 반대하는 대신들도 있었지만 왕(이방원)은 듣지 않고

“ 나는 임금으로 문상을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 가는 것이다. 경들은 친한 친구가 죽으면 문상을 아니 갈 것인가 ”

하고는 말을 타고 직접 길재(吉再)가 누워있는 충청도 도봉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왕과 그의 일행이 목계강(지금의 충주 남한강)에 당도하여 강을 건널려고 건너편에 있는 나룻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흐르던 물이 갑자기 정지하고 폭우로 불어난 강물이 얕아졌다. 하도 이상하여 동행한 신하가 말을 타고 그대로 강을 건너보니 건널만 했다. 그러자 왕은 말을 탄 채 강을 건넜다. 왕(이방원)은

“ 허허 그것 참 기이한 일이로고. 내가 강가에 당도하니 강물이 멈추고 수위가 낮아 말을 타고 건널 수 있다니...”

하면서 왕은 일행과 함께 길재의 빈소로 향했다. 왕(이방원)은 말을 타고 가면서 옆에 있는 이숙번에게 혼잣말처럼

“ 길재는 내가 벼슬을 시킬려고 여러차례 조정으로 불러 들였지만 조정에 누(累)를 끼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관직에 나가지 않았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벼슬을 하여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길재는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후진 교육에 몸을 받쳤지.. 그리고 오늘 이 충청도 도봉에 와서 눈을 감았구만... 생각하면 길재와 같은 충직한 신하도 없었지.. 길재는 충신중에 충신이었지.......”

이숙번은

“ 왜. 아니 그렇겠사옵니까. 참으로 보기 드문 청렴결백한 선비였지요....”

왕(이방원)은 계속

“ 길재는 내가 잠저(潛低)에 있을 때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를 하여 절친한 사이였지.. 그래서 누구보다도 길재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고 있지... 길재를 벼슬 시킬려고 내가 정종께 간청을 하여 봉상박사를 제수할려고 했는데 길재는 기어코 받아드리지 않았어... 모두들 벼슬을 못해서 안달인데 길재는 굴러온 벼슬도 싫다하고 내쳤으니... 생각하면 그만한 인물도 없었어.. 참으로 깨끗한 선비였지... 하하하... 어서 가자 이럇 ! ”

하며 말에 채칙을 가하자 말은 피잉 울며 앞으로 달렸다. 일행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길재(吉再)의 사망 소식이 방방곳곳으로 전해지자 청렴결백한 선비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조문객들이 매일같이 빈소에 줄을 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목계강(지금의 충주 남한강)은 사람이 강을 건너는 지점에 와서는 수위가 매우 낮아 허벅지까지 옷을 걷어 올리면 그대로 강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낮에는 강물이 흐르지 않고 밤에만 흘렀는데 강물이 흐리지 않으니 강을 건너기가 쉬웠다.

사람들은 강을 건너는 길목에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고 강물 또한 낮에는 흐르지 않는 이유는 길재(吉再)의 죽음을 애통해 하여 그의 빈소를 찾는 문상객들이 쉽게 강을 건너가도록 하기 위해 천지신명(天地神明)이 도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도 이 강은 길재(吉再)의 3년 상(喪)이 끝날 때까지 낮에는 흐르지 않고 밤에만 흘렀다고 한다. 길재(吉再)의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성품과 부귀영화에 일말의 야욕도 없는 그의 깨끗하고 고귀한 인품에 하늘도 감탄했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尾)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