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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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1.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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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어느날 작제건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상선(商船)을 타고 당나라로 떠났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짙은 안개와 심한 풍랑을 만나 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뱃사람들은 점을 친후 함께 탄 고려인(高麗人)을 내려놓고 가기로 결정했다. 뱃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작제건은 활과 화살을 몸에 지닌 채 바다로 뛰어 내려야 했다. 그러나 작제건이 바다로 뛰어내리는 순간 안개가 걷히고 심한 풍랑이 잠잠해져 배는 날아갈듯 가볍게 떠나 버렸다.

배가 떠나 가자 작제건 앞에 용왕(龍王)이 나타났다. 용왕은 매일 저녁 늙은 여우 한 마리가 부처의 형상을 하고는 소라 나팔을 불고 경을 읽어 자신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 작제건에게 그 여우를 잡아 줄 것을 간청했다. 작제건은 용왕의 청에 따라 관음보살로 변장한 늙은 여우를 죽이게 되었고, 용왕은 그 보답으로 작제건의 소원을 하나 들어 주기로 하였다. 용왕이 작제건에게 소원을 물었다.

“그대의 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그러자 작제건은

“내 소원은 동방의 왕이 되는 것이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용왕은

“동방의 왕이라....동방의 왕이 되려면 세울 건(建) 자가 붙은 이름으로 자손까지 삼대(三代)를 거쳐야만 하오”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작제건은 아직 왕이 될 때가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동방의 왕이 될 것을 포기하는 대신 용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였다. 작제건이 사위 되기를 간청하자 용왕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대의 소원이라면 내 큰 딸을 줄 것이오”

하고는 장녀 처민의를 작제건에게 주었다. 용왕의 사위가 된 작제건은 송악 남쪽 기슭에 터전을 잡았는데 그 곳은 곧 옛날에 강충이 살던 곳이었다. 작제건은 용녀(龍女)에게서 네 아들을 얻었는데 장남을 용건(龍建)이라 하였다.

용건은 후에 융(隆)으로 이름은 고쳐 왕륭(王隆)이라 했고 자(字)는 문명이라고 하였으니 이가 곧 왕건(王建)의 아버지이다.

용건(왕륭)은 어느날 꿈에 한 미인을 만나 부부가 될 것을 약속했다. 꿈에서 깬 뒤 송악산 영안성으로 가는 길에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바로 꿈에서 본 여자였다. 그래서 용건(왕륭)은 그녀와 혼인을 하였다. 사람들은 용건(왕륭)이 꿈에서 보았다고 하여 그녀를 몽부인(夢婦人)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녀가 삼한(三韓 : 후고구려, 후백제, 고려)의 어머니가 되었기에 성을 한(韓)씨라 하였다. 그녀가 왕건의 어머니 한씨이다.

왕건은 신혜왕후 유(柳)씨를 비롯하여 총 29명의 아내를 두었으며 그들에게서 25남 9녀를 얻었다. 29명의 부인들 중에서 제2비 장화왕후 오(吳)씨가 1남(혜종), 제3비 신명순정왕후 유(劉)씨가 정종과 광종을 비롯하여 5남 2녀, 제4비 신정황후 황보(皇甫)씨 1남 1녀, 제5비 신성왕후 김(金)씨 1남, 제6비 정덕왕후 유(柳)씨 4남 3녀, 헌목대부인 평씨 1남, 정목부인 왕씨 1녀, 동양원부인 유(庾)씨 2남, 숙목부인 1남, 천안부원부인 임(林)씨 2남, 홍복원부인 홍(洪)씨 1남 1녀, 소광주원부인 왕(王)씨 1남, 성무부인 박(朴)씨 4남 1녀, 의성부원부인 홍(洪)씨가 1남을 낳았다. 이 외에도 정비(正妃) 신혜왕후 유씨를 비롯하여 나머지 12명의 부인은 자식을 낳지 못했다.

둘째 부인 오(吳)씨는 나주 목포 사람으로 부친은 오다련군이며, 조부는 오부돈이다. 왕건이 오씨를 만난 때는 910년이었다. 이 때 오(吳)씨의 나이는 17살이었고 893년에 태어났다.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과 싸우기 위해 나주에 진주(進駐)하여 시냇가를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구나. 오색 구름이 떠 있다니..”

왕건은 중얼거리면거 시냇가에 나가보니 (吳)씨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오씨의 아버지 오다련군은 왕건이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사위로 삼고자 하였고 왕건(王建)은 오씨와 동침하여 부부인연을 맺었다. 셋째 부인인 신명순성왕후는 충주의 유력가 유긍달의 딸이었고, 네 번째 부인인 신정왕후는 황주를 대표하는 황보(皇甫)씨 가문 황보제공의 딸이었다.

(제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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