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지나친 세속화를 우려한다
상태바
종교의 지나친 세속화를 우려한다
  • 권우상
  • 승인 2019.04.02 13: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생활의 지혜라는 말은 흔히 듣지만 종교의 지혜라는 말은 생소한 어감을 준다. 세속생활에도 지혜스러움이 있어야 그 생활이 윤택하게 된다면 출세간적인 생활에 있어서는 더욱 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생활의 예지라는 어감에 더욱 친근감이 내포되어야 함에도 소원한 느낌을 주는 것은 우리들이 종교생활은 깊이 하지만 종교의 지혜를 가까이 하지 않음에 있는 것이다. 종교란 지혜생활의 종합이다. 종교에 있어서 믿음을 연속시키게 하는 것은 지혜의 빛으로 일체를 비추고 그늘진 곳이나 어두운 곳을 찾는 손길이 있어야 한다. 종교인이 처음이나 끝이나 항상 가깝게 하고 그것에 친해져야 할 것은 계율의 생활화이다. 이것이 없다면 종교적 생명 가치나 예지가 싹틀 수 없다. 종교적 생활 즉 지엄한 계체(戒體)에 자기를 담아보지 않는 사람은 그 계책에서 품어 나오는 계향(戒香)이 있을 수 없다. 계체의 쓰임새 또는 계체의 향기가 온 몸에 배이고 그 배인 것이 주변에 훈습할 때 종교적 향기가 풍겨나게 되는 것이다. 원효스님도 계율의 존엄성을 지극히 강조하면서 계(戒)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계(戒)란 해와 달과 같다. 첫째, 해와 달은 그 스스로 참되게 물들지 아니하고 그 스스로 밝고 깨끗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바깥 세계의 어두움을 파헤치고 어둠속에 가려 있던 일체의 존재를 잘 드러내 보인다. 계란 것도 이와 같이 해와 달과 같은 것이다. 그 자체는 잡되게 물들지 아니하고 그 스스로 밝고 깨끗하여 많은 번뇌와 죄업 등이 어두운 장애물을 파헤치고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둘째, 해는 엄청난 힘이 있는 것이 특성이요, 달은 서늘하고 시원하게 한다는 것이 그 성품이다. 만약 달만 있고 해가 없으면 모든 식물은 썩어 싹이 날 수 없을 것이다. 계도 역시 그와 같은 것이어서 만약 섭률의계와 섭선법계만 있고 섭중생계가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마치 자리행만 있고 이타행은 없는 것이 되는 까닭에 성문연각의 이승과 한 무리가 되어 무상보리의 중요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또 만약에 섭중생계가 있을지라도 섭률의계와 섭선법계가 없으면 오직 이타행만 있고 자리행이 없게 되는 까닭에 범부나 다름이 없게 되어 보시(布施)의 싹을 돋아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해와 달이 다 갖추어져 있어 능히 썩지 않고 싹이나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계도 역시 위의 세 가지 계(戒)를 갖추고 있으므로 능히 범부나 이승과 같을 수 없어 더 위 없는 보리(菩提)의 세가지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해와 달은 땅을 떠나 공중에 떠다니는 듯하나 허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님과 같이 보살은 삼취정계를 지키되 어느 한 나라에만 치우침이 없고 어디에 집착함이 없으므로 법성의 허공에 나르지만 공견에 집착함이 없는 것이다. 종교생활에 있어 계체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이것을 신앙하지 않는 소님은 양심의 명제를 망각하고 무차치나 유차의 경우에 빠지고 만다. 진실이란 참으로 드러내기 힘든 행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의를 획섭하고 선법을 섭리하지 않으면 중생을 도섭할 수 없다.

오늘날 양식이나 믿음이 물량위주의 색계(色界), 욕계(欲界)에 휘말리기 쉬우나 삼취계의 덕목을 가슴 깊이 심고 이것이 생활의 향기로 풍겨 나오게 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몸과 마음에 배이고 슬기와 손길이 무애하고 자재롭게 활용될 때 대지(大智)와 대비(大悲)는 중생을 구원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 불교 등 오늘날 종교는 지나치게 세속화 되어 있다. 즉 기복(祈福) 신앙에 너무 젖어 있다. 이런 기복 신앙의 물결을 타고 일부에서는 종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느 기독교인은 십일조 헌금이 부담된다는 말도 들린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시대에 있는 지금 어느 종교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하여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절감하여야 한다. 종교가 잘못된 인간의 행동을 저지하고 상호 믿음으로 엮어 세계 인류에 희망을 주어야 하고, 고통스러운 육신에 환희를 안겨주는 종교로 발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 신앙인들은 부자나 빈자나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