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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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4.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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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회

그들 중 말을 가진자나 말을 다룰 수 있는 자는 모두 신기군에 편제되었고 말이 없는 자는 보병(步兵)에 편제되었다.

또한 승려들은 따로 항마군을 만들에 군사훈련이 참여하도록 하였다. 말하자면 별무반은 모든 백성들이 전면전을 치르기 위한 국가총력군이었다.

이렇게 조직된 별무반은 2군 6위의 정규군과 함께 1년동안 제주도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뒤 마침내 여진(女眞) 정벌에 나섰다.

고려군(高麗軍)이 음력 10월의 한겨울에 출병한 것은 변방에서 여진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선제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토양이 척박하여 곡식이 풍부하지 못한 여진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군량미 조달이 어려운 겨울이 가장 적합한 계절이기도 했다. 게다가 눈이 내리면 기마병의 활약이 둔화된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윤관이 17만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하자 예종(睿宗)도 서경(西京)을 향하여 출발했다. 왕이 좀더 전장에 가까이 다가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였다.

윤관과 오연총은 동북 동북 변방에 이르러 군대를 장춘역에 주둔시켰다. 그리고 윤관은 군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고려군은 17만 대군이다. 이만한 군사라면 능히 여진족 오랑케들을 물리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국왕 폐하께서도 가까이 와 계신다! 그러니 목숨을 버린다는 각오로 싸워야 할 것이다!”

하자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일제히 창칼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와! 하는 함성을 질렀다. 윤관은 다시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면서 쌀밥과 고기국을 싫컨 먹어라. 그리고는 내일이면 17만 대군으로 여진족 오랑케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소탕하라!”

또 다시 와아 ! 하는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다음 날 병마판관 최홍정과 황군상을 정주와 장주 두 고을에 파견하여 여진족의 추장들을 불러 오게 하였다. 명목은 고려 조정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여진의 추장 허정과 라불을 석방하니 관문으로 와서 명령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믿고 여진족의 추장 고라를 비롯하여 4백여 명이 고려 관문에 도착하자 윤관은 그들에게 술과 고기를 내놓고 풍성하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술 취한 틈을 타서 미리 준비해 둔 복병(伏兵)을 시켜 섬멸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4백여 명의 여진족 추장 무리중 의심을 품고 관문을 넘어오지 않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임을 당했다.

여진족의 추장들을 거의 섬멸시킨 윤관은 출동명령을 내렸다.

“총공격하라 ! 총공격하라 !”

윤관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고려군의 기마병들은 와아 ! 하는 함성과 함께 일제히 여진군의 진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윤관 자신이 군사 5만 3천을 거느리고 정주 대화문 나섰으며 중군병마사 김한충이 3만 6천 7백을 이끌고 안륙수로 나아가고, 좌군병마 문관이 3만 4천의 군사를 이끌고 정주 홍화문으로 향했다.

또한 우군병마사 김덕진은 4만 4천의 군사를 이끌고 선덕진의 안해, 거방 두 초소의 중간 지점으로 나아갔으며 선병별감 양유송과 원홍 도부서사 정숭용과 진병 도부서부사 견응 등은 수군(水軍) 2천 6백을 이끌고 도린포로 떠났다.

대회문을 나선 윤관은 한나절을 진군하여 문내니촌에 당도했다. 고려군이 그곳에 도착하자 여진군은 기세가 꺾여 마을을 버리고 보동음성으로 들어가서 수비태세를 갖추었다.

그러자 윤관은 임언과 최홍정에게 군사를 내주고 마을을 공략하여 잔병들을 패주시키고 성(城)으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성(城) 앞에 이르자 여진군이 결전을 다짐하며 고려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려군은 먼저 항복을 종용했으나 여진군은 굴복하지 않았다. 이에 고려군은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여진군의 거센 화살과 돌 공격을 뚫지 못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고려군과 여진군의 밀고 당기는 피를 말리는 공방전이 계속되었지만 전혀 진전의 기색이 없자 윤관은 척준경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날이 저물면 사태가 우리에게 불리할 터이니 그대가 장군 이관진과 협력하여 적진을 돌파해 줘야겠네‘

윤관의 말에 척준경이 말했다.

“제가 일찍이 장주에서 종군하다가 과오로 죄를 저지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장군께서 저를 장사라고 하며 조정에 특별히 간청하여 용사 받았으니 오늘이야말로 저의 한 몸을 희생하여 국가에 보답하겠습니다”

척준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갑옷을 입고 방패를 앞세우며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는 적진으로 달려가 적장 다섯 명을 단숨에 쳐 죽였다. 그러자 고려군은 다시 기세가 되살아났고 그 틈을 이용하여 윤관은 휘하 부대와 좌군을 출동시켜 여진군을 일시에 궤멸시켰다.

이렇게 첫 승리로 장식한 윤관은 척준경에게 비단 30필을 주어 포상하고 김부필과 이준양으로 하여금 여진군의 장수 이위동을 치게 하였다.

그러나 이위동의 여진군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고려군이 역습을 받아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려 진영으로 너무 깊숙이 파고든 여진군은 1천 2백여 명의 전사자를 내며 대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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