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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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5.1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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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회

이 조서를 받고 척준경은 은근히 마음이 움직였다. 척준경은 원래부터 충성심이 강하고 용맹스러운 인물이었기 때문에 왕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마침 이자겸의 아들 이지언의 집사가 척준경의 집사와 시비가 붙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소한 일로 싸움을 벌인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상전을 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너희 상전은 임금 있는 자리에 대고 활을 쏘고 궁중에 불을 질렀으니 그 죄는 죽음을 면치못할 터이고, 너도 마땅히 관노로 끌려가야 될 터인데 감히 네놈이 나에게 욕할 하다니...”

이 말은 곧바로 척준경의 귀에 들어 갔고, 척준경은 이자겸의 집으로 달려가서 따지며 의관(衣冠)을 벗어 던져버렸다.

그러자 난처한 입장이 된 이자겸은 이지미와 이공의를 보내 화해를 요청했으나 척준경은 욕지거리를 퍼부어대며

“더러운 것들...이제 난 관직을 버리고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면서 노여움을 풀지 않았다.

이 소문이 인종의 귀에 들어가자 인종(仁宗)은 지추밀원사 김부위를 급히 불렀다.

“척준경이 이자겸과 불화를 하고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두 사람을 떼어 놓도록 하시오”

하고는 말안장을 가지고 가서 선물로 주고 본자리에 돌아오도록 설득하라고 명령했다.

인종(仁宗)의 명령을 받은 김부위는 척준경에게 찾아가 제 위치로 돌아가 일을 보라고 권유하며 안장을 끼울 말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왕실을 위해 충성을 다하려면 이자겸을 제거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인종은 복구된 연경궁으로 옮겨갔고, 이자겸도 연경궁 남쪽에 거처를 마련하여 지내면서 북편 담을 뚫어 궁궐과 통하도록 하였다. 또한 군기고에 두었던 갑옷과 병장기를 모두 자신의 집으로 옯겨 놓았다.

이자겸은 당시 도참설에서 유래된 파자점(破字占)을 신봉하고 있었는데 그것에 따르면 ‘십팔자(十八字)가 왕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성씨인 이(李)자를 분해하면 십팔자(十八字)가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자겸이 왕위 찬탈을 결심한 것도 여기서 나온 것이었다. 이자겸은 왕위 찬탈을 실행하기 위해 독이 든 떡을 왕에게 올렸다.

하지만 떡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의 넷째 딸인 왕비는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폐하 ! 그 떡 안에는 독이 들어 있사오니 드시지 마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왕은 깜짝 놀랐다.

“떡 안에 독이 들어 있다니 그게 사실이오?”

“소첩이 어찌 거짓을 아뢰겠사옵니까?”

왕은 떡을 즉시 밖으로 가지고 나가 까마귀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자 떡을 먹은 까마귀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러자 왕은 이자겸이 자신을 독살할 결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자겸을 경계하였다.

이자겸은 자신이 보낸 떡을 왕이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독약(毒藥)을 보내 왕비에게 왕이 먹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왕비는 그릇을 들고 가다가 고의로 넘어져서 독약을 엎질러 버렸다.

이렇듯 이자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왕을 독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자겸이 두 번이나 독약으로 왕을 살해 할려고 했다는 소문을 들은 척준경은 드디어 왕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맹세를 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인종(仁宗)은 친필로 쓴 서신을 환관(宦官) 조의를 시켜 척준경에게 전하도록 하였는데 이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승덕부 군사들이 병장기를 가지고 대궐 북쪽으로 올 것이다. 만약 그들이 침문을 침입하여 내가 살해를 당한다면 그것은 내 덕이 없음을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원통한 것은 태조가 창업하고 역대 성왕이 이어온 왕통이 내 몸에 이르러 만약 타성으로 바뀐다면 이는 나만의 죄가 아니라 실로 나를 보좌한 대신들의 심대한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그대는 속히 대책을 강구토록 하라”

왕의 친서를 받은 척준경은 인종이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장수 7명과 관노(官奴) 30여 명을 인솔하여 궁궐로 향했다.

그때 이들은 무기가 없어 목책나무를 몽둥이 삼아 뽑아든 채로 달려갔다.

환관의 인도를 받아 그들이 궁궐안으로 들어가자 순검도령 정유황이 군사 1백 명을 이끌고 군기감으로 들어가서 갑옷과 병기를 꺼내 나누어 주고 연경궁으로 향했다.

그는 도중에 이자겸의 부하인 소경 유원식을 만나자 그가 이자겸에게 알릴 것을 염려하여 칼로 목을 죽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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