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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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6.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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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성질이 포악한 최씨는 남자에 대한 색욕(色慾) 또한 대단이 강했다. 하루도 남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그야말로 색마(色魔)와 같은 여자였다.

그래서 최씨는 남자 종과 간통(姦通)을 하기가 예사였다. 이 소문이 이의민의 귀에 들어갔고, 이의민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수하 장졸들을 집 주변에 매복시켜 최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최씨는 대낮에 방에서 남자 종과 간통(姦通)을 하다가 이를 알게 된 수하 장졸이 이의민에게 급히 보고 하였고, 결국 이의민에게 발각되었다.

"네가 종놈과 붙어 재미를 보다니..시퍼렇게 살아있는 서방을 두고 종놈과 간통을 해...이제 너같은 계집년은 필요 없으니 나가거라”

하면서 최씨를 쫓아냈고, 최씨와 간통(姦通)을 한 남자 종은 목을 베어 죽였다.

최씨는 이의민에게

“당신도 종년과 간통을 했는데 어찌 나만 이러십니까?”

하자 이의민은 더욱 노발대발 하여

“이년이 그래도 주둥아리를 놀리는구나. 남자는 열 계집이라도 거느릴 수 있지만 여자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의 법도란 걸 모르느냐?”

하였다.

이의민의 색욕(色慾)은 극치에 달했다. 양갓집 규수든 남의 아내든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품에 안았다. 그리고 싫증이 나면 곧 쫓아내고 다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곤 하였다.

아버지의 이 같은 성품을 이어받은 아들 지순, 지영, 지광 등의 횡포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지순은 김사미와 효심의 반란 때 토벌대 장군으로 출전하였는데, 난적들이 노획한 재물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 그들과 내통하여 의복, 식량, 신발, 버선, 가축 등을 팔아 재물을 축적하였다.

김사미의 반란과 효심의 반란은 1193년에 각각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이었다. 이 반란들은 각각 다른 곳에서 일어났지만 같은 시기에 과거 신라의 중심지역에서 일어난 것과 농민이 주동이 되었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1170년 이후에는 무관정권이 성립되어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정권을 거쳐 이의민이 10년간 조정의 권력을 농단하던 시점에서 일어난 이 두 반란사건은 1176년에 발생한 망이. 망소이 반란과 그 성격이 대동소이(大同小異) 하였다.

망이. 망소이 반란 이후에도 무관(武官)들이 하층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횡포가 계속되고 고려(高麗)의 기반계층인 농민들이 이반하기 시작했고, 1190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로 농민들의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다가 1193년 7월 경상도에서 대대적인 농민 봉기가 일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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