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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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7.2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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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그는 왕위에 오르자 최충헌(崔忠獻)이 머물던 홍녕부를 진강부로 고치고, 그에게 문경무위향리조안공신의 칭호를 주었으며, 국정 전반에 관한 모든 업무를 최충헌이 별감으로 있던 교정도감에 맡겼다.

그리고 1213년 8월 지병으로 병에 누웠으며 그달 정축일(丁丑日)에 태자 진에게 왕위를 물러주고 62세의 나이도 생을 마감했다.

임종을 앞두고 그가 내린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내가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지가 이제 몇 년째 되었는데, 짐이 박덕하여 중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병으로 위독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슬프고 슬프도다. 하지만 인간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 짐인들 어찌 천명(天命)에 따르지 않을 것인가. 임금의 자리는 잠시도 비울 수 없기에 태자 진의 덕행이 안방의 동의를 얻을만큼 그의 총명은 아랫사람들을 능히 통솔한 만 하므로 그에게 왕위를 주어 중대하고 어려운 일을 맡기노니 여러 백관들은 그를 잘 보필하여 각자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한 치의 소흘함도 없이 새 임금에게 충성하고 복종하라.....

......내가 죽은 후 능묘 제도는 화려함이 없이 검박하고 절약하게 할 것이며, 한 달 입을 상복을 3일 후에 벗도록 하라. 꼭 그리 시행토록 하라 -

이 조서(弔書)가 내리자 왕실과 여러 대신들은 왕의 임종을 슬퍼하며 통곡하였다.

강종(康宗)은 사평왕후 이씨와 원덕왕후 유씨 2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그들에게서 고종과 수녕궁주를 얻었다. 사평왕후 이(李)씨는 이의방의 딸이다.

강종(康宗)이 태자로 있을 때 이의방의 권력에 의지하여 1174년 3월에 태자비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그해 12월에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 의해 이의방이 살해되면서 입궁 9개월 만에 대궐에서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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