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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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8.0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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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몽고군은 5만의 기병대로 다시 고려를 침공해 왔다. 이 때가 1233년이었고, 이것이 고려를 3번째로 침략한 전쟁이었다. 몽고군은 고려의 전국토를 유린하였다. 하지만 민족의 결속을 위해 고려인들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조판하며 곳곳에서 처절한 항전을 계속하였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몽고군과 싸울 것이다! 우리 고려인이여! 모두가 단결하여 몽고군에 대항하자!”

이러한 외침은 전국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무기가 없을 때에는 낫이나 도끼를 들었고, 죽창이나 몽둥이, 삼지창(三指創)까지 들고 나와 몽고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이러한 항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려 조정은 몽고에 강화를 요청했다.

이 때 몽고군은 내부에 권력 암투가 벌어져 고려의 화의(和議) 요청을 받아들이고 서둘러 본국으로 철군(撤軍)하였다.

하지만 몽고군은 1247년 다시 고려를 침입하였다. 침입한 구실은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를 요구하였으나 고려 조정이 이를 듣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몽고군의 제4차 침입이었다.

전쟁이 시작된지 십여 일만에 몽고군은 철군하였다. 몽고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왔기 때문이었다. 철군한 몽고군은 1251년에 다시 출육환도(出陸還都 : 왕이 육지로 나오고 도읍을 원래대로 옮김)릉 요구하였다.

그러자 고려 왕(고종)은 환도의 뜻을 품고 조정 대신들의 의견을 수렵하였다. 이 때 최향은

“폐하! 출륙환도는 아니되옵니다”

하고 반대하자 일부 최향의 편에 서 있는 대신들도 일제히

“그러하옵니다. 출륙환도는 아니되옵니다”

하였다.

이 때부터 출육환도를 반대하는 최향측과 출육환도(出陸還都)를 주장하는 신하들간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왕(고종)은

“짐은 개경으로 환도하고 몽고와 화친을 하여 나라를 평온하게 하려고 함인데 어찌 반대를하시오”

하였다. 그러자 최향은

“폐하의 뜻대로 개경으로 환도를 한다해도 몽고가 반드시 화친에 응한다는 보장이 없사옵니다. 만약 우리가 몽고의 꾀에 넘어간다면 이 나라의 사직은 위태롭게 되옵니다. 하오니 폐하께서는 강화도에 머무시고 우리 고려군은 끝까지 대항하여 싸울 것입니다”

하면서 출륙환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몽고군은 1253년 다시 제5차 침입을 강행했고, 왕(高宗)이 몽고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승천부로 나와 몽고 사신을 맞아들임으로써 다시 한번 몽고군은 철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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