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상태바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10.07 1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7.

그리고 이 해에 연경(燕京)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그녀의 시신은 고려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소생은 없었다. 1317년 원나라의 인종으로부터 계국대장공주의 시호가 추봉되었다.

의비는 몽고 여자로 이름은 야속진이다. 야속진은 원나라의 왕실녀가 아니라 평민출신이었다. 하지만 인물이 출중하여 궁녀로 발탁되었다가 충선왕의 후비가 되었다.

그녀는 충선왕과 결혼하여 세자 감과 충숙왕을 낳았다. 그녀는 줄곳 충선왕을 따라 개경에 체류하다가 1316년 연경에서 사망하였으며 사신은 고려로 옮겨져 묻혔다.

장례 후 의비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하지만 충숙왕 즉위 후에도 태후로 추존되지는 않았다.

정비 왕씨는 서원후 왕영의 딸이다. 1287년 그녀는 원나라 왕실의 요구에 따라 공녀(貢女)로 바쳐질 운명에 놓였다. 그런데 당시 원나라로 가던 충선왕이 장차 자신이 그녀에게 장가들려고 한다고 말하여 그녀는 공녀(貢女)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1289년에 그녀는 충선왕(忠宣王)과 결혼하여 세자빈이 되었다.

하지만 이 결혼이 동성혼이라는 이유 때문에 원나라 세조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원나라는 고려 왕실과 몽고 공주와의 결혼을 관례로 정착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동족혼을 금지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원나라의 위지는 관철되어 1308년에 충선왕은 즉위년 교서를 통하여 동성혼을 법으로 금지시키고 왕실과 통혼할 수 있는 대상으로 15개 귀족 가문을 선정하였다.

귀족가문으로서 충선왕과 혼인하게 되는 집안은 남양 사람 홍규의 딸인 순화원비, 상원 사람 평양군 조인규의 딸 조비, 공암현 사람 허공의 딸 순비 등과 함께 한 때는 충렬왕비였으나 그의 사후에 다시 충선왕비가 된 언양 사람 김양감의 딸 숙비가 있다.

정비는 왕족 간의 혼인이라는 것과 고려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충선왕의 첫 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몽고 여자 의비에 이어 제3비로 머무르다가 1345년에 사망했다. 소생은 없었다.

순화원비 홍씨는 남양부원군 홍규의 딸이며 1292년 세자빈에 간택되어 입궁하였으며, 소생은 없었다.

조비는 상원군 출신 평양군 조인규의 딸이다. 1292년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으며, 충선왕과 금실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1298년에 계국공주가 입국하여 그녀와 충선왕의 관계를 질투하면서 원나라 왕실에 고발하는 바람에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게다가 그녀를 비방하는 익명서가 나붙어 아버지 조인규와 어머니가 원나라로 압송되고 그녀도 원나라에 압송되어 많은 고초를 당했다.

순비 허씨는 공암현 사람으로 중찬 허공의 딸이다. 그녀는 처음에 평양공 왕현에게 시집가서 3남 3녀를 낳았는데 왕현이 죽은 후 1308년에 충선왕에게 개가하였다.

그리고 그 해에 충선왕(忠宣王)이 왕위에 오르자 순비에 책봉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