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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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10.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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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즉시 원나라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어 단사관을 파견하도록 요청하겠소이다”

공주가 친정(원나라)의 세력을 엎고 보복하려는 태도는 왕의 마음을 더욱 불쾌하게 했다. 왕과 공주와의 다툼은 여기서 그치지 많고 더욱 격렬해졌다. 공주는 폭발하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질투의 대상인 덕비 홍씨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알몸이된 덕비 홍씨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문 밖에는 공주의 시녀와 궁인들이 숨을 죽인 채 공주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었다.

공주는 분통이 터지는 듯 덕비에게 화풀이를 하자 충숙왕이 보지 못해 말리는 도중 서로 실랑이를 벌렸다. 그러다가 공주가 왕의 팔에 한번 채이자 공주는 그냥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동시에 시뻘건 코피를 쏟았다.

시녀들이 달려 들어와 공주를 밖으로 모시었다. 어느 사이에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윗목 쪽에 나체로 벌벌 떨고 있는 덕비를 바라보고는 눈을 가렸다.

그날 밤 충숙왕과 공주(복국장공주)는 다시 유련사에서 티격태격 싸움을 벌렸다. 그러다가 공주는 왕에게 구타를 당하여 또 상처를 입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공주는 병석에 누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때가 1319년 9월이었고, 고려에 온지 3년만이었다.

원나라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나, 공주의 장례에 참석했던 원나라 조문사절(弔文使節) 귀에 이런 사실이 들어갔다.

원나라에서는 선사 이상지(李常志)를 개경으로 보내 그 사실여부를 조사하게 되었다. 이상지는 우선 공주의 시녀와 음식을 맡아 보던 요리 책임자 한만복(韓萬福)을 문초하였다. 한만복은 심문을 당하자 1318년 8월에 왕이 연경궁에서 덕비 홍씨와 노는 것을 목격한 공주가 질투를 하다가 왕에게 얻어 맞아 코피가 난 일과 그 다음 달에 다시 유련사에서 왕으로부터 심하게 구타당한 사실을 실토했다.

이렇게 되자 이상지는 호라적 출신 궁녀 1명과 한만복을 원나라로 압송해 갔고, 왕은 겁이나 측근에 있던 백원항(白元恒), 박효수(朴孝修) 등의 신하를 시켜 한만복이 거짓진술을 변명하여 원나라 중서성에 상주토록 하였다.

당시 원나라 조정에서는 고려에서 들어간 환관(宦官)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환관들의 농간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고려에서는 그들 환관에게 뇌물을 주어 무사히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이 사건 이후 충숙왕은 원나라 왕실의 불신을 받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1320년 원나라에서는 영종(英宗)이 새롭게 즉위하였고, 심양왕 왕고는 영종이 신임을 받으며 충숙왕을 강하게 비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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