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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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10.1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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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당시 왕고파인 유청신과 오잠이 원나라 중서성에 가서

“충숙왕은 눈이 멀고 귀 먹은 벙어리라 친히 정사를 돌볼 수가 없다”

하고 거짓말을 하였고, 충숙왕은 왕자 정을 세자로 책봉하여 원나라에 입조하도록 하였다. 이에 태정제는 매려로 하여금 유청신과 오잠의 말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충숙왕이 왕고인 세자인(世子印)을 가져간 이유를 캐내게 했던 것이다.

충숙왕을 접한 매려는 유청신과 오잠 등이 거짓말을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왕고가 심양왕 직에 있을 때 고려(高麗) 세자를 겸할 수 없다는 충숙왕의 설명을 듣고 모든 것이 왕고의 무고(誣告)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일로 입지가 강화된 충숙왕은 왕고의 도당인 조식, 김온, 권하, 전굉 등을 순군옥에 가두어 귀양 보내는 등 왕권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몸이 약해져 1330년 2월 세자 정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 앉았다가 그해 7월 원나라에 가서 머물렀다.

하지만 충혜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음탕한 짓을 일삼다가 원나라에 조정에 의해 폐위되자 1332년 2월 복위하였다.

복위한 충숙왕은 원나라에 머물러 있으면서 민상정과 조염휘를 파견하여 정승 윤석을 비롯한 손기, 김지경, 배전, 오자군, 강서 등 수십명에 대해 왕을 잘못 받든 죄로 삭직(削職)하고 유배시켰다. 그리고 몽고 여자 경화공주를 데리고 1333년 3월에 고려로 돌아왔다.

충숙왕은 고려로 돌아 온 후 원나라가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는 세공(歲貢)을 삭감케 하고 공녀(貢女)와 환관(宦官)의 징발을 중지하도록 청원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으나 오래전부터 나타나던 대인기피증이 심해져 신하들을 멀리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복위 8년만인 1339년 3월에 지병이 악화되어 4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충숙왕(忠肅王)은 공원왕후 홍씨를 비롯하여 복국장공주, 조국장공주, 숙공휘령공주, 수비 권씨 등 5명의 부인을 두었다. 그는 이들 부인에게서 3명의 아들을 얻었는데 공원왕후 홍씨가 충혜왕과 공민왕을 낳았으며, 조국장공주가 용산원자를 낳았다.

충숙왕의 뒤를 이어 고려 제28대 왕으로 등극한 충혜왕(忠惠王)은 충숙왕의 장남이자 공원왕후 홍씨 소생으로 1315년 1월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정(幀), 몽고식 이름은 보탑실리다, 1328년 1월에 원나라의 승인을 받아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330년 2월에 몸이 병약하여 정치에 염증을 느낀 충숙왕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이 때 그는 16세의 어린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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