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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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12.2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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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폐위된 공양왕은 공양군으로 강등되어 원주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간성으로 이배되었다. 그후 다시 삼척으로 이배되었다가 이성계의 명령에 의해 1394년 4월 50세를 일기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으며, 1416년(조선 태종 16년)에 공양왕으로 추봉되었다. 능은 경기도 원당과 삼척 두 곳에 있다.

공양왕은 순비 노씨에게서 세자 석(왕석)과 숙녕, 정신, 경화공주 등 1남 3녀를 얻었다. 순지 노씨는 교하 사람으로 창성군 노진의 딸이며 공양왕이 정창군으로 있을 때 시집와 1389년 11월 공양왕이 왕위에 오르자 순비에 책봉되었다.

이 때 공양왕은 그녀를 위해 위거부를 설치하고 관속을 두었다. 그러나 1392년 7월 공양왕이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자 공양왕과 함께 원주에 유배되었다.

그후 공양왕이 고성, 삼척 등지로 이배됨에 따라 그녀도 유배지를 옮겼으며, 1394년 4월 공양왕이 사약을 받고죽을 때 함께 죽었다.

그녀의 능 역시 공양왕과 함께 경기도 원당과 삼척 두 곳에 있다. 세자 왕석은 공양왕의 장남이며 순지 노씨 소생으로 초명은 서이다. 처음에 정순군에 봉해졌다가 공양왕이 즉위하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391년에 이원굉의 딸을 맞이하여 세자빈으로 삼았다.

1391년 말에 공양왕을 대신하여 신년축하 하례(賀禮) 차 명나라에 가서 이듬해 귀국했다.

1392년 7월 조준 등의 이성계 일파에 의해 공양왕이 폐위되자 원주에 유배되었다. 그리고 삼척에서 공양왕이 죽을 때 함께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全州) 이씨며 전주 이씨의 시조는 이한(李翰)이다. 이성계의 21대 조상인 이한은 신라 사람으로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인물인데 이한의 아내 김씨는 태종 무열왕의 10세 손인 김은의의 딸이다.

이한(李翰)과 김씨 사이에 태어난 아들 이자연은 시중(侍中) 벼슬을 지냈고, 손자 이천상은 좌복야 벼슬을 지냈다.

그 뒤로 이천상은 아간 벼슬을 지낸 광희를 낳았고, 광희는 사도 상중대광 입전을 낳았고, 이후로 염순, 승삭, 충경, 경영, 충민, 화, 진유, 궁진, 용부를 거텨 고려의 내시 집주, 이인에 이르렀다.

이인은 대장군 이양무를 낳았고, 이양무가 상장군 이강제의 딸에게 장자를 들어 이안사를 낳았는데 이안사가 바로 이성계의 고조부이다.

이안사는 원나라에 귀순하여 천호 벼슬을 얻었으며, 이후로 행리, 춘, 자춘으로 이어지며 후손들이 벼슬을 대물림했다.

이자춘(李子春)은 1315년에 이춘(李春)과 부인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몽고식 이름은 오로사불화이다. 형 이자흥(李子興)이 일찍 죽자 이자춘은 어린 조카 이천계(李天桂)가 성장한 뒤에 벼슬을 돌려 주기로 약속하고 형의 지위를 이었다.

하지만 이천계(李天桂)가 성장한 뒤에 이자춘은 천호의 벼슬을 돌려 주지 않았다. 이자춘이 천호 벼슬을 잇게 되자 자신의 외손자에게 천호 자리를 잇게 하려던 쌍성의 조총관은 이자춘을 몹시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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