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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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20.01.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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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간밤에도 요기를 못하였으니, 배고픔을 참기 어려웠다. 상진(相眞)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주머니에 든 돈이 몇 푼 안되므로 머슴 강만수와 함께 아침 요기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책과 돈을 잃게 한 머슴 강만수를 죽이고 싶도록 미운 터에 밥을 사먹이기는 더욱 싫었다. 이 놈은 어떻게 해서라도 죽이기는 해야 하겠는데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주막집이 건너다 보이는 골목에서 상진(相眞)은 당나귀를 멈췄다.

“여보게 강서방, 내 지금 읍내에 살고 있는 친구를 잠시 만나보고 올 터이니 자네는 이곳에서 당나귀 고삐를 꼭 붙들고 기다리되 두 눈을 꼭 감고 있게”

눈을 감고 있으라는 것은 선비된 처지에 혼자만 밥을 사먹는 것이 겸연쩍어서 그렇게 시킨 것이다. 강만수도 이런 상진(相眞)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네”

강만수는 당나귀 고삐를 한 손에 붙들고 눈을 감았다.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주막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 속셈을 눈치 챈 강만수가 살그머니 눈을 떠 보니, 과연 도련님이 혼자 주막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고삐를 붙들고 사방을 휘돌아보고 있으니까 마침 점잖은 노인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여보슈 노인장”

“왜 그러슈?”

노인은 매우 의아스러운 눈치로 강만수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저는 평안도 사람으로 한양에 가는 도중에 그만 노자가 떨어져 할 수 없이 이 당나귀를 파는 것이니 아주 싼 값으로 사가시오”

“얼마에 팔겠소?”

“열 냥만 주시오”

“열 냥이라? ”

“그렇소”

열 냥이라면 싼값이었다. 아무리 헐값에 팔아도 스무 냥짜리는 족히 될 짐승이었다.

노인은 두말 없이 돈 열 냥을 선뜻 강만수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런데 노인장, 이 당나귀 고삐를 한 뼘만큼만 잘라 주시오”

“그건 무엇에 쓰시려우?”

“팔기가 아까워 그럽니다”

노인이 보아하니 과연 애석해 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고삐 쯤이야 짧아도 상관이 없지를 않는가. 그까짓 고삐는 새것으로 바꾸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노인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어 당나귀 고삐를 한 뼘 정도 잘라서 강만수에게 주고는 당나귀를 끌고 바삐 가버렸다.

강만수(姜萬洙)가 돈 열 냥을 허리춤에 간직하고는 한 뼘 정도 되는 당나귀 고삐를 손에 쥐고 눈을 감고 태연히 서 있었다. 그러자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의 얼굴이 빨갛게 된 채 주막집을 나와 이쪽을 향해 급히 걸어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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