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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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3.0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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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듬해 봄, 효동은 옥청과 결혼했다.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옥청의 아버지가 장사를 하기 때문에 거래상 아는 사람이 많아 하객들이 많았다. 선뜻 내키는 결혼은 아니었지만 미파공주(美巴公主)를 만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다가 나라의 정세가 불안하고 혹여 교역으로 임라국(대마도)에 간다고 해도 미파공주와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잘못하면 탁순국(卓純國) 거타지왕(巨他之王)의 딸 미파공주를 데리고 도피한 죄로 잡힐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바에야 차라리 옥청과 결혼하여 이곳에서 정착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효동은 대행수 고방촌의 뒤를 이어 탁순국(진해)에서 제일 큰 상단을 이끌어 가야하는 막중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갈수록 나라 정세는 불안해졌고 강도나 도적떼들이 출몰하여 상단의 물건을 강탈하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게다가 자타국(창녕), 산반하국(진주), 아라국(함안), 다라국(합천) 등은 늘 사소한 일로 군사적 무력충돌이 일어나는가 하면 북쪽에서는 말갈과 동옥저가 전쟁을 벌리고 있었다.

이 무렵 일모(日恈)가 18살이 되던 해, 웅본국의 이소지(伊蘇志) 왕은 걸손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걸손국(구주)을 손에 넣었고 웅본국(熊本國)의 왕이 되었다. 이 전쟁에 일모(히호고)도 참전했다. 5천의 가마병을 이끌게 된 총지휘관은 일모(히호고)였다. 일모는 군사를 이끌고 걸손국의 국경에 닿자 걸손국의 군사들도 항전을 하기 위해 국경에 집결해 있었다. 걸손국의 지휘관은 이노불(伊老不)이었고 무예가 출중한 장수들도 많이 있었다. 이때 일모(히호고)는 걸손국 진영을 향해 큰 소리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항복하면 살려 줄 것이라고 했다.

걸손국의 장수 이노불은 남의 나라를 먼저 침략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웅본국 군사들이 물러간다면 우리도 싸우지 않을 것이니 물러가도록 하라고 했다. 일모는 걸손국은 우리 웅본국 군사들과 싸워 이길 수가 없다면서 피를 보지 말고 항복하라고 하자 이노불은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안다면서 걸손국을 그리 만만하게 보지 말라면서 걸손국(乞飡國)에는 웅본국(熊本國) 군사 보다 무예가 뛰어난 장수가 많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걸손국 중에 가장 무예가 뛰어난 장수가 나와서 나와 한번 겨누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이소지의 제안에 이노불은 그렇게 해서 웅본국 장수가 진다면 군사들을 물릴 것이냐고 하자 이소지는 장수는 한번 뽑은 칼을 다시 넣는 법은 없다면서 칼을 뺐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찌르는 것이 장수의 도리이니 결코 물러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나와 대적할 자는 어서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말을 탄 이소지가 검을 뽑아 들고 나설려고 하자 일모(日侔 : 히호고)는 말을 한발 앞으로 나서면서 자신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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