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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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3.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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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고차국(高嵯國)의 남은 군사들도 상군, 중군, 하군 세 군영으로 다시 전투 대열을 정비하여 사방에서 벌떼같이 쳐들어 온 탁순국 군사들을 보자 더 이상 싸울 용기를 잃고 항복하거나 끝까지 탁순국 군사들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성안에서 싸우다가 겨우 살아남은 군사들도 무기를 놓고 항복하자, 말에서 떨어진 고차국 구다왕은 가슴에서 쏟아지는 피를 한손으로 틀어쥐고 졸마국의 거타지왕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항복하였다. 이 전쟁에서 고차국(高嵯國 : 고성)은 크게 패하여 탁순국(卓純國:진해) 거타지왕(巨他之王)의 군사들에게 항복했다.

탁순국 거타지왕은 그 여세를 몰라 다라국(多羅國 : 합천)으로 진격했다. 갑자기 탁순국의 공격을 받은 다라국(多羅國 : 합천)은 급히 군사를 출동시켜 방어에 나섰다. 거타지왕이 이처럼 속전속결로 다라국을 공격한 것은 자신의 형인 아진타왕이 통치하던 사이기국(斯二岐國)이 다라국의 비슬라(比瑟羅) 왕에게 함락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사이기국을 다시 찾고 형인 아진타왕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두 나라간의 치열한 전투는 사흘이나 계속되었다. 닷세 째 되는 날에 접에 들면서 다라국(합천) 군사들의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도망치는 군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전세는 탁순국(진해)의 승리로 점점 기울어 가고 있었다.

다라국(합천) 전세가 이처럼 불리하게 된 것은 탁순국(진해) 군사들은 기마병으로 무장되어 있는 데 반해 다라국 군사들은 대부분 보병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시작된지 엿세가 되는 날 다라국의 왕 비슬라왕은 거타지왕 앞에 나서서 항복했다. 그러나 거타지왕은 자신의 형인 아진타왕을 죽이고 사이기국을 침탈한 죄로 형장에서 참살했고, 그의 가족과 신하들도 모두 처형했다. 탁순국(진해)과 다라국(합천)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거타지왕은 승상 마천우에게 고차국(고성)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라국(多羅國 : 합천)은 거타지왕이 직접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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