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상태바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6.03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9.

“아, 이 사람이 미쳤나, 졸지에 그림 잘 그리는 사위는 무엇이야? 그리고 그림 잘 그리는 놈이 무엇 때문에 가난한 내 집 딸을 데려 가려구 한다든가?”

“그럼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기는 할텐가? 어서 대답해 보게.”

“그것은 그때 보아야지.”

“그럼 이 좌석에서 당사자가 있으니 승낙을 하게, 바로 저 서운세 말일세, 나이는 이제 마흔 셋, 풍체 좋고 그림 잘 그리는 화가 어때, 자네 집 선대에서 이런 화가가 있었든가? 이 혼인만 하면 꽃이 활짝 피었네, 꽃이 활짝 피었어, 두 말 말고 그렇게 하게나.”

이 때에 좌중에 않았던 여러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심지어 부성지를 광인(狂人)으로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오직 고팔배만은 놀라거나 분노하는 기색이 없이 싫다 좋다 말이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것을 본 양성지는 대답을 재촉했다.

“어서 대답을 해 보게 왜 말이 없는가?”

“좀 더 생각해 보아서 후일에 기별 하겠네.”

그렇게 말하는 고팔배는 아주 싫지도 않은 눈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기처럼 가난한 집으로서는 부자집과 혼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십 칠세 된 딸을 마흔이 넘은 홀애비에게 그것도 두 번이나 상처(喪妻)한 홀애비에게 삼취(三娶)로 시집을 보내는 일은 너무도 미안한 일이니 자기 아내와 한 번 의논한 후에 결정하려고 했다. 고팔배가 집으로 돌아와서 술이 깬 다음에 아내에게 이 말을 의논하였다. 그러자 아내는 펄펄 뛰며 거절했다.

“그 무슨 소리요, 재취도 아니고 삼취로 딸을 시집 보내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

그림 잘 그리는 화가(畵家) 사위를 두는 것도 좋으나 마흔이 넘은 홀애비 사위가 마음에 꺼리던 차에 아내의 반대를 당하고 보니 굳이 고집할 수도 없어 고팔배는 부성지에게 혼인을 거절하는 서찰(書札)을 보냈다. 그리고 불과 한 달이 못되어서 고팔배의 딸은 그 시골에서 수십 리 되는 곳에 혼인을 정했다. 혼인 날이 되자 고팔배의 집 마당에는 채색차일을 구름 같이 높이 치고 빈객들이 들끓었으며,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산더미처럼 쌓여 제법 큰 잔치 분위기였다. 그런데 초례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신랑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얼마를 더 기다려도 역시 종무소식이었다. 초조한 기색이 신부댁을 어지럽히고 있는데, 얼마 후에 하인 몇 사람이 오더니, 사랑채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 주인을 비롯하여 온 식구가 모여서 수군수군하며 얼굴에 대단히 당황한 빛이 보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