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상태바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6.04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0.

이 때에 양성지도 연석에 참례하였다가 이 모양을 보고 비록 남이라도 한 동네에 살며 절친한 사이였으므로 집안끼리 수군대는 곳을 뚫고 들어가 그 까닭을 알아 보았다. 고팔배를 비롯하여 모두가 얼굴이 흙빛이 되고 경황이 하나도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부성지는 주인 고팔부를 사랑채 뒤쪽 헛간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했다.

“그참 안타까운 일이구만,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 팔자는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운명일세. 생각해 보게나. 말은 왜 졸지에 놀라서 도망을 하며, 말 고삐를 잡은 놈은 졸고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설사 말이 뛰어서 낙마를 하였기로서니 떨어져서 다치기나 할 것이지, 왜 그 자리에서 죽는단 말인가, 그러니 이게 다 타고난 사주팔자라는 것일세, 무엇보다도 자네 딸에게 장가를 못들어서 원한이 된 서한세가 있기 때문일세, 그러니 두 말 말고 내가 지금 가서 서한세로 하여금 관복을 입고 초례청으로 들어가게 할테니 죽은 신랑은 잊어버리고 그림 잘 그리는 화가 사위나 보도록 하게 어떤가?”

고팔배가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니 많은 사람들 앞에 창피 당하기는 마찬가지요, 딸은 혼례 준비를 했으니 이미 과부가 된 셈이었다. 고팔부는 체념한 듯이 남의 말 하듯 입을 열었다.

“모르겠네, 자네 말대로 하게 나는 구경이나 하겠네.”

부성지는 옳지 됐다 하고 즉시 고팔부의 집 외양간에서 말을 한 필 끌어오라 해서 올라 타고 채칙질을 하여 서운세 집으로 급히 달렸다. 서운세 집에 도착한 부성지는 미친 사람처럼 서운세를 일으켜 옷을 입게 하고 관복을 입힌 뒤 자기가 타고 갔던 말에 올려 앉히고, 동네 하인들을 불러 배종하게 하고 자기가 후행이 되어 폭풍같이 고팔배의 집으로 들어섰다. 이 모양을 본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으며, 심지어 하인 중에서는 길을 막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고팔배의

“다들 막지 말고 물러 나시오!”

하는 호령 한마디에 물러났으며, 신부를 초례청으로 내어 보내는 신부 어머니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면서도 가장(家長)이 하는 일이라 어찌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이 의아해 했지만 혼례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홀애비 삼취(三娶)에 신부의 나이가 어려 부부의 짝이 기울어도 어지간해야 노소동락(老少同樂)하는 셈을 친다고 해도 이처럼 서로의 나이가 너무 기울고 보니 보는 사람도 송구할 지경이요, 신부의 모친은 초상을 당한 듯이 애처로운 울음만 꺼이꺼이 울고 있었고, 집안 사람들은 저마다 까닭없이 홀애비 노신랑 서운세를 미워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신랑이 오는 것을 서운세가 죽인 것도 아니며, 그 신랑을 서운세가 밀어 젖히고 자기가 들어선 것도 아니었다. 싫던 좋던 어쨌거나 혼인을 했으니 서운세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었다. 이것이 모두 부성지의 덕택이라고 생각하자 서운세는 세상에 이런 친구도 흔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