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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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6.0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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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그날 밤이 되어 화촉동방의 불이 밝혀지자 신부의 모친은 은근히 그의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우리 딸이 인물이 박색이요, 사지가 병신이요, 침선이 남만 못한가요, 비록 오던 신랑이 말에서 떨어져 죽었더라도 차차 보아서 다른 집으로 여봐라 하는 듯이 총각한테 시집을 보낼 것이지, 이제 열 일곱된 어린 것을 마흔이 넘은 홀애비한테 똥 걸레 버리듯 줘버리니 대체 딸을 시집 보내자는 거요, 아니면 먹지 못할 쉰떡을 쓰레기로 버리자는 거요?”

그 말에 고팔배는 발끈했다.

“듣기 싫소, 제 팔자에 오죽하면 첫 남편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하고 과부가 되었겠소, 이번에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시집을 잘 갔으니 아무 말도 말고 나중 일을 두고 보시오.”

혼인한 지 사흘이 지나자 어린 신부가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 마치 나이가 상당한 부인보다도 단정하고 머리가 영특하여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알아 차리었다. 게다가 얼굴도 빼어난 미인이었다. 이런 여자가 옆에 있자 서운세는 다시 화필(畵筆)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운세의 그림 솜씨는 삽시간에 다라국(多羅國) 전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림으로는 먹고 살 수 없어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

서운세의 부인 고씨(高氏)의 나이가 열 아홉이 되자 첫 아들을 출산하였다. 서운세는 아들 이름을 서량(徐亮)이라고 지었다. 서량이 태어난지 일년이 겨우 지난 후였다. 고씨는 서량이 깊이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잠을 깨울 요량으로 제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러나 서량의 얼굴은 이미 사색으로 변해 있었고 전신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고씨는 혼비백산 해서 넋을 잃고 말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자식을 어찌 이렇게 허망하게 하루 아침에 잃어 버린단 말인가? 간밤에 별다른 아픈 징후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무슨 연유로 세상을 버렸다는 말인가? 고씨는 당장 통곡이라도 하고 싶으나 곧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평정을 되찾았다. 연로하신 시어머니가 아직 잠에서 일어나지 않는 탓이었다. 고씨는 애간장이 끊어지는 심정으로 이미 숨이 끊어진 서량(徐亮)을 등에 업고 발소리를 낮춰 부엌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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