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상태바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6.17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9.

그날 밤 -

서량(徐亮)의 꿈 속에 흰 수염을 기다랗게 늘어뜨린 노인 한 사람이 나타나더니 일행 중에서 서량을 남겨두고 떠나면 폭풍이 그치고 뱃길 또한 무사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튿날 잠에서 깬 서량은 곧 모든 일행들을 불러 간 밤에 꾸었던 꿈이야기를 들려주며 일행들에게 나무 패마다 각자 자기의 이름을 새기도록 했다. 일행들이 각자 나무 패마다 이름을 새기자 서량은 이 나무패를 바다에 던지라고 말했다. 바다에 던져진 나무 패들은 거센 파도 위로 이리저리 떠다니는데 놀랍게도 그 중 하나가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가 잠시 후 다시 올라왔다. 일행들이 그것을 건져보니 나무패의 주인은 서량이었다. 그러자 서량은 일행들에게 말했다.

“아마 바다에 용신이 나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여기에 남을 터이니 파도가 잠잠하거던 모두들 후한으로 떠나십시오.”

일행은 난처해졌다. 서량을 후한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서량이 가지 못한다면 큰 일이었다. 그렇다고 비비람이 몰아치는 풍랑을 무시하고 그대로 서량을 후한(중국)으로 데려 갈 수는 없었다. 일행들이 난처한 얼굴로 시름에 잠겨있자 서량은 말했다.

“용신께서는 나를 요구하시는 것이 분명하니 내가 여기에 남을 것이니 다른 분들는 후한으로 가셔서 내가 후한에 갈 수 없었던 연유를 광무제 왕에게 말씀해 주시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서량은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소리쳤다.

“용신이시어! 이 서량이 여기에 남을터이니 비바람을 잠재워 주시옵소서.”

서량(徐亮)의 말에 기적처럼 하늘이 천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일행은 놀라우면서도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채비를 마쳤다. 서량을 대려가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배는 바람을 타고 잔잔한 수면 위로 미끄러지듯 떠나고 서량(徐亮)은 속수무책으로 바위에 서서 한 손으로 어깨에 맨 커다란 화살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배가 수평선 너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서량은 천천히 섬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