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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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7.0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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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이듬해 신라의 하울(河蔚) 장군은 군사 5천을 이끌고 다라국을 침공하였으나 워낙 성이 높고 견고하여 성벽을 뚫기가 어려운 데다가 다라국 군사들의 반격이 거세어 다시 되돌아 갔다. 허우위왕은 축성을 개축한 덕택으로 신라군의 침략을 쉽게 막아내자 소사명을 어전으로 불러 높이 칭찬하였다.

“이번에 신라의 침략을 막아낸 것은 새로 쌓은 축성의 덕택인줄 아오. 그대가 축성을 개축하자고 했을 때 부역에 동원되는 백성들의 원성을 생각하여 축성을 개축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두렵고 소름이 끼치오. 참으로 그대야 말로 이 나라의 충신중에 충신이오.”

하면서 소사명을 칭찬하자 소사명은

“과찬의 말씀이옵니다. 앞으로 소장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대다라국을 위하는 구국충정의 일념으로 대왕을 모시고 대다라국 수호에 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신라는 국경 지역에 병력을 증강 배치하여 다라국과의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신라의 움직임에 불안을 느낀 다라국은 마침내 거우위왕 재위 41년에 마두성(청도)을 공격했다. 공격을 당하기 전에 먼저 선제공격으로 신라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총 병력은 3천 5백여 명이었고 대부분 기마병이었다. 하지만 다라국(多羅國)의 선제공격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신라의 탈해왕은 아찬(벼슬) 길원(吉元)에게 기마병 4천을 주어 다라국이 마두성(청도)으로 진격해 올 걱을 첩자를 통해 알아 내고 이 지역에 두 갈래로 나누어 산속에 매복 배치다.

하지만 다라국은 이러한 신라군의 동태를 알지 못하고 마두성으로 공격해 들어가다가 신라군의 기습을 당했다. 결국 다라군(多羅軍)은 신라를 먼저 공격하였으나 신라군과 접전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다라군은 거의 전멸상태로 크게 패하였다. 이때 다라군(多羅國)은 도망친 자가 겨우 백여 명에 불과 했으니 완전히 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라국의 거우위왕(巨優位王)은 자신의 작전 실패를 크게 후회하고 통탄했다.

다라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신라의 탈해왕은 그해 다라국의 접경지역에 배치된 병력을 보강하기 위해 5천의 기마병을 증강하고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함으로써 다라국(多羅國)을 더욱 압박하였다. 이러한 신라의 군사시위에 위기를 느낀 다라국의 거우위왕은 어차피 전쟁을 할 바에야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명장 보루, 소사명, 연추, 효동, 감해랑 등에게 각각 기마병 1천씩 모두 5천을 주어 신라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때 왕자 불연은 소사명과 연추의 호위를 받으며 참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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